![]() 며칠동안 몸이 안 좋아서 계속 누워만 있었습니다. 몇 년전까지는 워커홀릭이라 잘 쉬질 못했고, 요즘은 학교와 온유 때문에 잘 쉬질 못했는데 아픈 것을 핑계 삼아서 며칠을 푹 쉬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충성한다고 열심히 살았는데, 과연 충성은 안식과 대치되는 말일까요? 참 신기한 것은 하루, 또 하루를 보내며 몸이 좋아지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셨는데 (저를 포함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쉬지 않고 달려가느라 그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갈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쉬지 않고 달려가면 남들보다 먼저 어딘가에 도착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제게는 그 도착의 의미가 모호했습니다. 그 골인지점이라는 것이 내가 더 서둘러 열심을 내면 도착하는 곳일까요? 만일 내가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것,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이 내 꿈이 되었다면 내가 쉬지 않고 달렸을 때 먼저 도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꿈이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는 뜻 가운데 있다면 나는 그저 오늘을 충성해야 할 뿐입니다. 충성한다는 것이 쉬지 않는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충성한다는 것은 그저 열심히 땀 흘리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충성한다는 것은, 주인의 명령을 온전히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인의 말에 내가 온전히 순종했을 때 때론 풍성한 수확을 얻을 때가 있을 것이고, 때론 빈손을 털어야 할 때도 있겠지요. 풍성한 수확을 얻었을 때야 말할 것 없이 기쁘겠지만 빈손이었을 때, 내 손에 아무 열매 없을 때 나는 과연 슬퍼해야 하는 것일까요? 내가 가진 결과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걸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을 이유는 이미 목적을 달성했기 때문입니다. 내 꿈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충성하는 이유는 풍성한 수확이 목적이 아니라, 주인의 흡족한 마음 때문입니다. 만일 내 꿈이 손에 가득한, 풍성한 열매를 가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말 그대로 실패한 인생이겠지만, 주인의 마음에 충성한 종이 되는 것이 소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충성하는 시간으로 말미암아 성공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 주인이 안식을 명령했을 때 나는 그것에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손에 무엇이 쥐어졌든, 그것은 부차적인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인생을 살 때는 글처럼 쉽게 칼로 잘라내듯 단순하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차적인 것들은 삶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고, 오해를 낳을 수도 있으며 때문에 눈물 흘릴 수 있고, 아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평안에 대해서만은 누구도 손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의 주인이 그 평안을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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