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젯밤, 우리 가족은 온수에 있는 처갓댁으로 향했고, 토요일 오전에 다시 스위트홈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아내와 온유는 이모와 외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을 이 시간, 나는 학교를 마치고 성남에 있는 우리집으로 돌아왔다. 어차피 잠만 자고 다시 집을 나서야 할 일들이 있었고, 밀려 있던 과제도 있어서 나 혼자 빈 집을 지키는 것이다. 남자는 동굴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빈 집에 덩그라니 있는 내가 조금 외롭기도 했으나, (10년 넘게 혼자서 자취했건만..) 그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는 잘 사용해야지!!! 하는 열망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아이가 태어나도 내가 해야할 것들, 시간들을 잘 조절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아내 명경도 내가 시간배분을 하고 작업 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고 도와줄 아이였으니까.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보니,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모든 시간과 모든 생활이 아기를 중심으로 흘러가야만 했다. 내가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었다. 아내는 그런 내가 안타까웠던지, 신경 쓰지 말고 내 일을 하라고 권하곤 하지만 집중해서 할 수 있는 시간이란 게 한계가 있어서 도저히 넘길 수 없는 마감에 다다라서야 뚝딱뚝딱 일을 처리해얄 때가 많았다. 회사원이야, 회사에 나가 회사일을 수행하고 돌아오면 된다지만, 나는 내 일이란게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터라,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작업을 하는 일보다 아이의 존재가 더 무거웠던 것 같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지만 사실 아내나 아이를 위해 탁히 시간을 할애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말을 해가며 내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반증이다. 흔히 하는 말, '할 일 없으면 얘나 봐라.' 이 말이 비꼬는 말이지만 반은 맞는 말이다. 할 일 있으면 도저히 얘를 볼 수 없을 정도로 한 생명의 존재는 너무나 크다. 처음 태어났을 때보다 하루 하루 다르게 아이와의 관계가 형성되고 더욱 친밀해지며. 그 관계 속에서 만나는 아이는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그러면서 나는 사랑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아이의 눈에 난 다래끼 하나에도, 이유식 한 스푼에도 반응하는 부모는 아이가 아파할 때, 그 아픔이 아이에게서 부모에게로 넘겨지기를 바란다. 이것이 유월절의 한 조각이 아닐까? 당신의 아이, 당신의 백성들의 아픔, 그 어쩔 수 없는 죄악을 자신에게로 옮기는 위대한 작업의 원형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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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셉이 이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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